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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회사는 모회사의 '판매대리인'인가, '독립된 판매자'인가?


자회사는 모회사의 '판매대리인'인가, '독립된 판매자'인가?

최근 다국적 기업의 국내 자회사를 통한 거래가 보편화되면서, 수입 물품의 과세가격을 둘러싼 관세 당국과 기업 간의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A사와 부산세관 사이의 관세 부과 처분 취소 소송은 수입자의 법적 지위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법적 기준을 제시한 사례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1심과 2심에서는 과세 관청의 손을 들어주었으나,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히며 거래의 형식과 실질을 둘러싼 치열한 법리 다툼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본 블로그 포스트에서는 부산지방법원에서 시작하여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A사 사건의 전개 과정과 각 심급별 판결의 핵심 논리를 시간 순으로 정리하고, 이를 통해 기업들이 얻을 수 있는 소송 전략과 시사점을 심도 있게 분석해 보겠습니다.


사건의 배경 및 재판의 진행 (Chronology)

이 사건은 중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 'A중국'와 그 한국 자회사인 'A 코리아(원고)' 사이의 거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 구조: 원고(A코리아)는 중국 본사(A중국)가 100% 출자한 자회사입니다.


  • 거래 흐름: 국내 회사들이 물품 입찰 공고를 내면, 원고가 이에 참여하여 낙찰을 받습니다. 이후 원고는 본사로부터 물품을 수입하여 국내 회사에 납품합니다.


  • 가격 결정: 원고는 본사의 지침을 받아 입찰 가격을 정했고, 낙찰 가격에서 일정 마진(1~2%)과 비용을 뺀 금액을 본사에 수입 가격으로 지급했습니다.


  • 처분:

    부산세관장(피고)은 "원고는 독자적인 구매자가 아니라 본사의 판매대리인(Sales Agent)에 불과하다"고 보았습니다.

    이에 따라 원고가 신고한 수입가격(본사에 준 돈)을 부인하고,

    국내 제강사들이 원고에게 준 돈(더 비싼 가격)을 기준으로 관세와 부가세를 부과했습니다.




​1. 사건의 전개: 1심부터 대법원까지​


​(1) 1심 및 2심: "거래의 실질은 판매대리인" (원고 패소)​ : ​부산지방법원 (2014구합21401)​ 및 ​부산고등법원 (2015누20312)

1심과 2심 재판부는 A코리아(원고)가 중국에 있는 모회사 A중국(수출자)의 단순한 '판매대리인'에 불과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실질적인 거래 당사자는 A중국과 국내 구매자들이며,

A코리아는 그 사이에서 수입 통관 및 전달 역할만 수행했다는 것입니다.



법원은 이러한 판단의 근거로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습니다.


  • A코리아는 A중국의 100% 자회사이며 대표가 동일한 점

  • 국내 구매자와의 입찰 가격 결정 시 A중국의 구체적인 지시를 받은 점

  • A코리아의 마진(1~2%)이 사전에 고정되어 있고, 가격 협상 과정이 형식적인 점

  • 수입 물품의 재고 위험이나 납품 지연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실질적으로 부담하지 않은 점


결론적으로 법원은 A코리아가 A중국에 지급한 수입가격이 아닌, ​국내 최종 구매자들이 A코리아에 지급한 판매가격을 기초로 과세가격을 산정​한 부산세관(피고)의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결했습니다.




​(2) 대법원: "형식 존중의 원칙, 섣부른 판매대리인 단정은 금물" (원고 승소, 파기환송)​ : 2015두49320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대법원은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대법원은

"납세의무자는 경제활동을 할 때 특정 경제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어떤 법적 형식을 취할 것인지 임의로 선택할 수 있고,

과세관청으로서도 그것이 가장행위라거나 조세회피 목적이 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납세의무자가 선택한 법적 형식을 존중하여야 한다"

고 전제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수입자가 수출자의 자회사로서 모회사의 지시에 따르거나 경제적 위험을 분담하는 등 일반적인 제3자 간의 거래와 다른 점이 있더라도,

그것이 ​거래통념상 모자회사 사이에서 보통 이루어지는 거래방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관련 계약 내용을 무시하고 자회사를 판매대리인에 불과하다고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습니다.



대법원은 A코리아가

자신의 명의로 국내 구매자들과 판매계약(DDP조건) 및 A중국과 수입계약(CIF조건)을 체결했고,

수입항 도착 후 국내 구매자 지정 목적지까지의 물품 멸실 위험 및 납품 지연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며,

물품대금 채권도 보유한다는 점을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이러한 계약상 권리·의무 관계의 외형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핵심 쟁점 정리: '독립된 구매자' vs '판매대리인'​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수입자인 ​A코리아의 법적 지위를 '독립된 구매자'로 볼 것인가, 아니면 수출자인 A중국의 '판매대리인'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였습니다.

이는 관세 과세가격 결정에 있어 결정적인 차이를 가져옵니다.


  • ​독립된 구매자로 볼 경우​: 과세가격은 ​A코리아가 A중국에 지급한 수입가격​이 됩니다.


  • ​판매대리인으로 볼 경우​: 과세가격은 실질 구매자인 ​국내 구매자들이 A코리아에 지급한 국내 판매가격​을 기초로 산정됩니다. 이 경우, A코리아의 마진 등이 포함되어 과세가격이 더 높아지게 됩니다.


결국, 법원이 거래의 '실질'을 우선할 것인지, 아니면 당사자가 선택한 '법적 형식'을 존중할 것인지가 관건이었습니다.





​3. 소송 전략​

이 사건에서 양측의 소송 전략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 ​과세관청 (부산세관)

    ​'실질과세의 원칙'​ 을 강조하며, 법적 형식보다는 경제적 실질에 따라 거래를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A중이 가격 결정권을 쥐고 있었고, A코리아는 위험 부담 없이 고정된 마진만 취하는 등 독립적인 사업자로서의 실체가 없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했습니다.


  • ​납세의무자 (A코리아)

    ​'법적 형식 존중의 원칙'​ 을 내세워, 조세회피 목적이 없는 한 당사자들이 선택한 계약의 형식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별개의 법인격으로서 자신의 명의로 계약을 체결하고 법적 위험(소유권, 멸실 위험 등)을 부담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모회사의 지시나 협력관계는 다국적 기업 그룹 내에서 통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영 활동의 일환이라고 방어했습니다.




​4. 시사점​

A코리아 사건 대법원 판결은 다국적 기업의 수입거래 과세에 있어 중요한 시사점을 남깁니다.


  1. ​'법적 형식 존중' 원칙의 재확인​:

    대법원은 조세회피 목적 등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기업이 선택한 거래의 법적 형식을 우선적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습니다.

    이는 과세관청이 거래의 경제적 실질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과세하는 것에 제동을 건 의미 있는 판결입니다.


  2. ​계약서 및 위험 부담의 중요성​:

    수입자가 독립된 사업자임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계약서상 수입·판매의 주체로 명시되고, 재고 위험, 가격 변동 위험, 하자보수 책임 등 거래에 따르는 실질적인 위험을 스스로 부담하고 통제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3. ​이전가격(TP) 정책과의 관계​:

    자회사의 기능과 위험 분석을 담은 이전가격 보고서(T/P report)의 내용이 관세 조사에서 수입자의 지위를 판단하는 중요한 근거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1·2심 법원은 이전가격 보고서에 기재된 '판매지원서비스' 문구를 A코리아가 판매대리인이라는 근거 중 하나로 삼았습니다. 따라서 이전가격 정책 수립 시 관세 평가의 쟁점까지 고려하는 통합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결론적으로, A코리아 사건은 다국적 기업 내부 거래에서 법적 형식과 실질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기업은 명확한 계약 관계를 설정하고 그에 따른 역할과 위험을 실질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예측하지 못한 관세 위험을 줄이고 안정적인 사업 운영의 기틀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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