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22. 3. 31. 선고 2021도11071 판결 - 기업인수(M&A) 과정에서 피인수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제공한 것이 배임에 해당하는지 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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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8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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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대법원은 2022. 3. 31. 선고 2021도11071 판결에서, 기업인수(M&A) 과정에서 피인수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제공한 것이 배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된 사안에서, 원심판결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배임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보아 상고를 기각하였습니다.
피고인
이 사건의 피고인은 A로, 2000년 12월부터 주식회사 J의 대표이사로 재직하였습니다.
사건의 경위
주식회사 J는 1987년 6월 설립된 종합전자유통회사로, 2004년 9월 기준 전국에 221개 영업점과 1,744명의 직원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2004년 12월 말 기준 J의 자산총액은 6,482억 원, 부채비율은 392% 정도였고, 주식은 1,508명의 다수 소유자들에게 분산되어 있었습니다.
피고인 A는 2004년 10월경 J의 최대주주가 되었으나, 지분율이 높지 않아 적대적 M&A를 우려하여 J의 매각을 모색하기 시작하였고, 해외 사모펀드 AE와 매각절차에 착수하였습니다.
AE는 2005년 1월 J 주식 100%를 보유할 특수목적회사(SPC) AB를 설립하였고, J 인수를 위해 총 6,919억 원의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그 중 4,120억 원을 차입금으로 조달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에 따라 AB는 2005년 3월 22일 국내외 금융기관들과 약 4,720억 원의 대출계약(이 사건 대출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검사의 주장
검사는 피고인이 J의 다른 이사들과 공모하여 J로 하여금 근저당권을 설정하게 한 행위가 배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검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습니다.
이 사건 근저당권 설정 당시 AB의 대출금 채무가 피담보채무에 포함되었다. 등기소에 제출된 국문 근저당권설정계약서에 의하면 J와 AB가 대주단에 대해 부담하는 모든 채무를 담보하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설령 영문 근저당권설정계약서에 의하더라도, 이 사건 합병의 효과까지 고려하면 피고인의 행위는 배임에 해당한다. 합병으로 AB의 대출금 채무가 J에게 승계되어 이 사건 근저당권의 피담보채무 범위에 포함되므로, J로서는 보유 부동산 전부가 AB의 대출금 채무를 위한 책임재산이 되어 환가처분의 위험을 부담하게 되는데, 이에 상응하는 반대급부가 없기 때문이다.
피고인의 주장
피고인은 이 사건 근저당권 설정이 배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습니다.
이 사건 근저당권 설정 당시 영문 근저당권설정계약서에 의하면 합병 전에는 J의 채무만이 피담보채무이고, 합병 후에는 합병법인의 채무가 피담보채무라고 명시되어 있다. 국문본과 영문본이 상충될 경우 영문본이 우선한다는 조항도 있다.
대주단은 AB의 J 주식 등을 담보로 하여 대출을 실행하였는데, 이는 J의 주식가치로 AB의 대출금을 담보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1심 법원의 판단
1심 법원은 이 사건 근저당권 설정이 배임에 해당한다고 보아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하였습니다.
항소심 법원의 판단
항소심 법원은 원심판결 중 일부를 파기하면서도, J 보유 자산의 담보제공 관련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배임)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이 사건 영문 근저당권설정계약서에 의하면, 합병 전에는 J만을 채무자로 하고 J의 채무만이 피담보채무이고, 합병 후에는 합병법인을 채무자로 하여 합병법인의 채무를 피담보채무로 정하고 있다. 실제로 J 소유 부동산에 설정된 근저당권의 채무자도 J뿐이다.
J 이사회는 J에 대한 대출금 상당의 담보제공만을 의결하였을 뿐 AB 채무에 대한 담보제공은 의결하지 않았다.
이 사건 국문 근저당권설정계약서와 영문본이 상충되는 경우 영문본이 우선하므로, 국문본을 근거로 AB 채무도 피담보채무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
대주단이 이 사건 대출 당시 J의 주식가치를 평가한 결과 AB 대출금을 담보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하였다.
근저당권의 채권최고액을 6,136억 원으로 정한 것은 합병 후 채권최고액 변경에 따른 비용을 줄이기 위한 것일 뿐 합병 전 피담보채무 범위와 무관하다.
근저당권설정등기에 AB 대출 채권자인 BL이 근저당권자로 기재된 것은 착오이거나 장래 합병을 고려한 것에 불과하다.
AE와 대주단은 이 사건 근저당권 설정이 J의 대출금 채무에 대한 담보로 제공되는 한도 내에서 유효하다는 법률자문을 받았다.
보충설명:
항소심 법원은 이 사건 근저당권 설정 당시에는 AB의 대출금 채무가 피담보채무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 근거로 영문 근저당권설정계약서의 내용, J 이사회 의결 내용, 대주단의 판단, 근저당권 채권최고액의 의미 등 다양한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였습니다.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배임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보아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였습니다.
시사점
이 사건 판결은 기업인수(M&A) 과정에서 차입매수(LBO)의 수단으로 피인수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제공하는 것이 배임에 해당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배임 성립 여부는 담보제공 당시 피인수기업이 인수자금 대출의 채무를 부담하기로 하였는지, 이로 인해 피인수기업에게 손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위험이 있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계약서 등에서 국문본과 영문본의 내용이 상충되는 경우, 영문본을 우선한다는 명시적 규정이 있다면 이에 따라야 한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업인수 과정에서 인수자금 조달을 위해 피인수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제공하는 것은 실무상 빈번히 발생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 피인수기업에 손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염려가 있다면, 피인수기업의 이사로서는 선관주의의무나 충실의무에 따라 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인수자금 대출이 실행되기 전 피인수기업이 합병 등을 통해 해당 채무를 실제 부담하게 될 것인지, 담보제공으로 인한 위험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급받을 수 있는지 등을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M&A 과정에서 피인수기업에 손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경우라면, 피인수기업의 이사는 배임죄의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M&A를 추진하는 단계에서부터 전문 변호사의 자문을 받아 관련 위험을 면밀히 검토하고 적절한 조치를 마련해 두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다만 이 사건의 경우처럼 피인수기업의 자산이 담보로 제공되는 시점에서는 인수자금 대출의 채무가 피인수기업에게 귀속되지 않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도 지급되었다면 배임죄가 성립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 배임죄가 성립할지 여부는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유사한 상황에 처한 경우 이 판결을 참고만 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전문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대응방안을 모색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