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안전 칼럼] 복도 끝 완강기를 막은 적치물, 단순한 '민폐'가 아닌 '범죄'입니다.
- barristers0
- 22시간 전
- 5분 분량

복도 끝 완강기를 막은 적치물, 단순한 '민폐'가 아닌 '범죄'입니다.
상가나 오피스텔 복도를 지나다 보면, 구석진 공간이나 비상구 앞을 개인 창고처럼 쓰는 경우를 종종 목격합니다. 특히 복도 끝 창문에 설치된 '완강기(피난기구)' 앞을 박스나 청소도구, 쓰레기통 등으로 막아두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대부분 "설마 불이 나겠어?", "잠깐 놔두는 건데 어때"라고 가볍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법의 관점에서 이는 명백한 위법 행위이며, 만약 사고가 발생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형사 책임을 지게 되는 중대한 사안입니다.
오늘은 완강기 앞 적치물이 왜 위험한지, 그리고 어떤 법적 책임을 지게 되는지 판례를 통해 명확히 짚어드리겠습니다.
1. 즉시 적용되는 행정 처분: 과태료 부과 대상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완강기 앞을 물건으로 막아두는 행위 그 자체만으로 이미 법을 위반한 것입니다.
관련 법령: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16조 제1항
위반 내용: 피난시설(완강기 등) 주위에 물건을 쌓아두거나 장애물을 설치하는 행위
처벌: 적발 시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
완강기는 법적으로 규정된 '피난기구'입니다. 소방서의 불시 점검이나 '안전신문고' 앱을 통한 시민 신고만으로도 즉시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습니다.
2. 화재 발생 시: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형사 처벌
문제는 실제로 화재가 발생했을 때입니다. 불이 났는데 적치물 때문에 완강기를 찾지 못하거나, 접근하지 못해 사람이 다치거나 사망한다면, 이는 단순한 과실을 넘어선 중대 범죄가 됩니다.
법원은 비상구나 완강기 앞을 막은 행위와 인명피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매우 폭넓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적용 죄목: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죄 또는 소방시설법상 소방시설법위반치사상죄
처벌 수위: 사망 사고 발생 시 최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
완강기 앞 통로를 막거나 물건을 쌓아두는 등 피난시설의 사용을 방해하는 행위로 인해 인명피해가 발생한 경우, 관련자에게 업무상과실치사상죄 등을 적용하여 형사처벌한 판례는 다수 존재합니다.
법원은 피난시설 및 통로 확보를 매우 중요한 안전 의무로 보고 있으며, 이를 위반하여 인명피해의 원인을 제공한 경우 건물주, 소방안전관리자, 영업주 등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3. 법원은 '장애물'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주요 판례)
실제 판례를 보면 법원이 피난시설 관리에 대해 얼마나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인천지방법원 판례 (공장 화재): 4층 완강기 앞의 적치물을 방치하여 근로자들이 탈출구를 찾지 못해 사망한 사건에서, 관리자에게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인정했습니다.
완강기 앞에 적치물을 방치한 소방안전관리자 등에게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인정한 사례 (인천지방법원 2020. 1. 9 선고 2019노1378 판결)
공장 화재 사건에서, 소방안전관리자 등 피고인들이 4층 완강기 앞 적치물을 그대로 방치한 과실 등이 인정되었습니다. 법원은 이러한 과실로 인해 화재 초기 진화나 피해자들의 대피 기회가 상실되었고, 완강기를 통한 탈출 등 대피 방법을 찾지 못해 인명 피해가 발생하였다고 판단하여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의 성립을 인정하였습니다.
부산지방법원 판례 (원룸 화재): 건물 구조 변경으로 완강기 사용을 불가능하게 만든 건물주에게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건물 5층을 원룸으로 불법 용도변경하여 완강기를 사용할 수 없게 한 건물주에게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인정한 사례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2012. 11. 29 선고 2012고단3031 판결)
건물주인 피고인 A는 5층을 여러 개의 원룸으로 용도 변경하면서, 각 방의 벽으로 인해 503호에 설치된 소방안전시설(완강기)을 다른 원룸 거주자들이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화재 발생 시 501호 거주자가 연기를 피해 탈출하다 추락하여 사망하자, 법원은 이러한 완강기 사용 불가 상태를 방치한 건물주의 업무상 과실과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여 업무상과실치사죄로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대구지방법원 판례 (사우나 화재) 등: 비상구 앞을 목욕 바구니 등으로 좁게 만든 행위가 대피를 지연시켰다고 보아 업주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었습니다.
목욕탕 비상구 앞을 칸막이와 진열장으로 막고 통로에 물건을 방치한 업주에게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인정한 사례 (대구지방법원 2019. 8. 12 선고 2019고단1581 판결)
사우나 업주인 피고인 A는 비상구 전면을 막고 칸막이 및 진열장을 설치하고, 통로 폭이 약 126cm에 불과함에도 입구 부근에 의자를 설치하고 다른 진열장 및 물건을 방치하여 비상구로의 진입 및 이동을 어렵게 하였습니다. 법원은 이러한 피난시설 관리 소홀의무 위반과 화재로 인한 인명피해(사망 3명, 상해 84명)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여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의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노래주점 비상구를 방이나 창고로 불법 개조하여 폐쇄한 것을 방치한 소방안전관리자에게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인정한 사례 (부산지방법원 2013. 2. 13 선고 2012고단8374 판결)
노래주점 업주들이 비상구 통로에 소파, 테이블 등을 설치하여 방으로 개조하고, 다른 비상구 복도를 주류박스 등을 쌓아두는 술 창고로 개조하여 비상구를 폐쇄한 사실을 소방안전관리자인 피고인이 알고도 필요한 조치를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이러한 관리감독 소홀의무 위반이 화재 시 인명피해(사망 9명, 상해 24명)를 유발하거나 확대한 중대한 과실이라고 보아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의 유죄를 인정했습니다.
4. 결론: 당신의 물건이 누군가의 '생명줄'을 끊을 수 있습니다.
상가 입주민이나 관리자 여러분, 복도는 여러분의 전용 공간이 아닙니다. 특히 완강기가 설치된 곳은 화재 시 고립된 사람들이 지상으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생명 통로'입니다.
지금 복도에 쌓아둔 물건이 있다면 즉시 치우십시오. 그것은 단순한 짐이 아니라, 위급 상황에서 타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흉기가 될 수 있으며, 당신을 법정에 세울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법적 책임의 근거: 사업주는 왜 처벌받는가?
사업주는 단순히 장소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그 공간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해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를 부담합니다.
화재 사고 시 형사처벌은 주로 아래 법령 위반과 그로 인한 인명피해(사상)의 결과가 결합될 때 이루어집니다.
소방시설법 제16조 (피난시설 관리 의무): 피난시설·방화시설을 폐쇄·훼손하거나, 주변에 물건을 쌓아두거나 장애물을 설치하는 행위를 금지합니다.
다중이용업소법 제11조 (피난시설 유지·관리 의무): 다중이용업주는 피난시설, 방화구획 등을 법률에 따라 유지·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형법 제268조 (업무상과실치사상죄): 위와 같은 주의의무를 게을리하여 사람을 사망이나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9조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은 시설, 설비의 설계, 설치, 관리상의 결함으로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이행할 포괄적인 의무를 부담합니다.
[사업주를 위한 법률적·실무적 솔루션]
"비워두는 것이 가장 저렴한 보험입니다."
상가 임대료가 비싸다 보니 복도 한 평, 구석 한 켠이 아쉬운 마음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 공간을 창고로 쓰다 얻는 '작은 이익'과, 사고 시 잃게 될 '사업의 존폐'는 비교조차 불가능합니다. 처벌을 피하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5가지 핵심 수칙을 제안합니다.
1. '일시적 적치'도 허용하지 않는 무관용 원칙 (Zero Tolerance)
법원은 "잠깐 청소하려고 내놨다", "물건 배송 와서 잠시 뒀다"는 변명을 받아들이지 않는 추세입니다. 화재는 예고 없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Action: 직원들에게 "완강기 앞과 비상구 통로는 성역(聖域)이다"라는 인식을 심어주십시오. 어떤 경우에도, 단 1분이라도 물건을 두지 않도록 철저히 교육해야 합니다.
2. 바닥에 '금지 구역' 마킹 (시각적 경고)
물리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Action: 완강기 하부나 비상구 앞 바닥에 노란색 또는 빨간색 안전 테이프로 구획을 표시하고, '적치 금지' 스티커를 눈에 띄게 부착하십시오. 이는 실제 적치를 막는 효과도 있지만, 향후 법적 분쟁 시 "사업주가 안전 관리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주의의무 이행)"를 입증하는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3. 관리 감독의 증거화 (Checklist & Photo)
사업주가 매번 지킬 서 있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관리했다는 기록은 남겨야 합니다.
Action: 매장 마감 체크리스트에 '소방 시설 주변 적치물 확인' 항목을 넣으십시오. 그리고 매니저나 관리자가 매일 해당 구역이 비어있는 상태를 사진으로 찍어 업무 단톡방 등에 보고하게 하십시오. 이러한 꾸준한 기록은 사고 발생 시 '업무상 과실'을 방어하는 가장 강력한 방패가 됩니다.
4. 직원 교육과 서약서 (양벌규정 대비)
직원의 실수로 사업주까지 처벌받는 경우(양벌규정)를 피하려면, 평소 교육이 필수적입니다.
Action: 정기 조회 시간에 소방 통로 확보의 중요성을 교육하고, 이를 교육 일지에 남기십시오. "본인은 소방 안전 수칙을 준수하며, 위반 시 책임지겠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받아두는 것도 직원들의 경각심을 높이는 방법입니다.
5. 공간 재설계 또는 외부 창고 활용
적치물이 계속 생긴다는 것은 내부 수납공간이 부족하다는 구조적 신호입니다.
Action: 억지로 복도에 쌓지 말고, 매장 내부 레이아웃을 변경하여 수납장을 늘리거나, 근처에 저렴한 소형 창고(공유 창고 등)를 임대하십시오. 월 몇 만 원의 창고 비용이 수억 원의 합의금보다 훨씬 저렴합니다.
[요약]
"사고는 '설마' 하는 곳에서 발생하고, 법은 '결과'를 놓고 판단합니다."
지금 당장 완강기 앞을 확인하십시오. 그곳이 비어 있어야, 당신의 사업도 안전할 수 있습니다. 피난 시설 앞을 비우는 것은 규제 때문이 아니라, 나와 내 직원, 그리고 고객을 살리는 가장 기본적인 경영 원칙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