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전기통신금융사기(미션 사기) 이용계좌 명의인에 대한 민사적 책임 법리 및 소송 수행 전략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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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신종 전기통신금융사기의 진화와 사법적 피해 구제의 필요성
최근 정보통신망과 모바일 금융 결제망의 비약적인 발달에 기생하여, 전통적인 보이스피싱(Voice Phishing)의 범주를 넘어서는 신종 전기통신금융사기가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특히 소셜 미디어와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을 매개로 한 이른바 '팀 미션 사기', '온라인 쇼핑몰 대리주문 부업 사기', '가상자산 투자 리딩방 사기' 등은 피해자의 심리를 교묘하게 조종하는 진화된 형태의 기망 수법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범죄 조직은 불특정 다수에게 접근하여 일정한 자금을 선입금하고 정해진 임무(미션)를 수행하면 원금의 수 배에 달하는 고수익을 보장하겠다고 유혹합니다. 초기 단계에서는 피해자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소액의 수익금을 정상적으로 환급해 주지만, 피해자가 이에 속아 거액을 입금하는 순간 각종 핑계(세금 문제, 전산 오류, 팀 미션 실패에 따른 연대 책임 등)를 대며 출금을 거절하고 최종적으로 연락을 두절하는 전형적인 폰지사기(Ponzi Scheme)의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가상의 원고가 사기 조직의 치밀한 기망 행위에 속아 총 2,000만 원이라는 거액의 금원을 2명의 서로 다른 명의자 계좌로 분할하여 송금한 상황을 상정하고 서술하고자 합니다.
일반적으로 범죄에 이용된 2명의 송금 수령인들은 사기 조직의 핵심 조직원이거나 기망 행위를 직접 실행한 주범이 아니라, 대출 실행이나 아르바이트 대가 등 불법적인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자신의 금융 계좌(접근매체)를 범죄 조직에 양도하거나 대여한 이른바 '대포통장 명의인'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범인 성명불상의 사기 조직원들은 주로 해외에 거주하거나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며 IP 우회, 대포폰 사용 등으로 신원 특정이 극히 어려워 현실적으로 이들을 상대로 한 형사처벌이나 민사상 피해 회복을 기대하기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피해자인 원고로서는 편취당한 금원이 종국적으로 거쳐 간 2명의 계좌 명의인을 상대로 하여 민사소송을 제기함으로써 피해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회수하는 방안을 강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들 계좌 명의인들은 소송 과정에서 자신들 역시 대출 사기 등의 피해자라거나 범행에 이용될 줄 몰랐다고 항변하며 책임을 전면 부인하는 것이 일반적인 실무의 경향입니다.
여기에서는 원고가 2명의 계좌 명의인을 상대로 송금된 2,000만 원의 반환을 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함에 있어 쟁점이 되는 민사상 부당이득반환청구권 및 공동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의 구체적인 성립 요건을 심층적으로 분석합니다.
2. 전기통신금융사기의 법적 포섭과 행정적 구제 절차의 한계
민사소송이라는 사법적 구제 절차에 돌입하기에 앞서, 국가 시스템 차원에서 마련된 행정적, 금융적 피해 구제 제도의 적용 가능성과 그 본질적인 한계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은 소송 전략 수립의 중요한 전제가 됩니다.
2.1. '미션 사기'의 전기통신금융사기 해당성에 관한 법리적 논쟁
최근까지도 일선 금융기관이나 수사기관의 일부 실무자들은 본 사안과 같은 '팀 미션 사기'나 '부업 사기'가 온라인 쇼핑몰의 상품 결제나 가상의 용역 제공이라는 외관을 띠고 있다는 점을 들어, 이를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이하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의 적용 대상인 전기통신금융사기가 아니라고 속단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구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제2조 제2호 단서가 '재화의 공급 또는 용역의 제공 등을 가장한 행위'를 전기통신금융사기의 정의에서 제외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피해자가 은행에 사기이용계좌에 대한 지급정지 등 피해구제 신청을 하더라도 접수 자체가 거부되는 부당한 사태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적이고 경직된 법 해석은 최근 대법원의 전향적인 판결에 의해 명확히 시정되었습니다. 대법원은 2024도6831 판결 등을 통하여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의 입법 취지와 목적을 목적론적으로 심층 해석하였습니다. 대법원은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이 원칙적으로 보이스피싱을 엄단하고 일반적인 소송절차 등을 통해서는 피해 구제가 어렵다는 현실적 인식하에 특별한 구제 제도를 둔 것이라고 설시하였습니다. 따라서 법 제2조 제2호 단서에서 '재화의 공급 또는 용역의 제공 등을 가장한 행위'를 제외한 것은, 진정한 의사에 기한 온라인 상거래에서 발생하는 채무불이행이나 일반적인 상사 분쟁을 규율 대상에서 배제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그 적용 범위를 확정하였습니다.
2.2. 2024년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의 대폭 개정과 피해 구제의 새로운 지평
전기통신금융사기가 급증함에 따라 입법부와 행정부는 기존 법령의 한계를 인식하고 2024년에 대대적인 법령(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개정을 단행하였습니다. 2024년 2월 27일 일부 개정되어 2024년 8월 28일부터 전면 시행된 개정 통신사기피해환급법 및 동법 시행령은 피해 예방과 구제 절차를 혁신적으로 강화하였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전기통신금융사기에 관련된 것으로 의심되는 계좌를 "사기관련의심계좌"로 새롭게 정의하고, 금융회사가 일정한 절차에 따라 상시적인 자체 점검을 실시하여 필요한 경우 계좌의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하여 이체, 송금, 출금을 지연시키거나 일시 정지하는 '임시조치'를 독자적으로 취할 수 있는 강력한 법적 권한과 의무를 부여한 점입니다. 아울러 전기통신금융사기 범행에 관한 정보를 제공받아 분석·공유하는 "정보공유분석기관"의 법적 근거를 신설하여, 금융회사 등 사기정보제공기관이 정보주체의 별도 동의 없이도 관련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피해 확산 방지 체계를 실질적으로 고도화하였습니다. 또한 사기 대응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경찰청 산하에 범정부 차원의 '전기통신금융사기 통합신고대응센터' 설치를 명문화하였습니다.
이와 더불어 금융위원회 등 금융 당국은 보이스피싱 방지에 전문성을 갖춘 금융회사가 내부 통제 소홀 등으로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피해액의 일부 또는 전부를 직접 배상하도록 하는 내용의 혁신적인 "무과실배상책임" 제도의 도입을 활발히 논의 중이며, 이는 향후 금융회사의 책임성을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제화될 전망입니다.
2.3. 행정적 구제 절차의 태생적 한계와 민사소송의 당위성
위와 같이 국가적 차원의 피해 구제망이 한층 촘촘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본 사안의 원고가 처한 구체적 현실 앞에서는 그 실효성이 현저히 반감될 수밖에 없습니다.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제9조에 따른 사기이용계좌의 채권소멸절차와 제10조에 따른 피해금환급절차는 어디까지나 피해금이 사기이용계좌에 물리적으로 '남아 있는' 경우에만 작동하는 제도적 메커니즘이기 때문입니다.
사기 조직의 자금 세탁 수법은 극도로 고도화되어 있어, 피해자가 계좌로 금원을 송금하는 즉시 자동화된 프로그램을 통해 1분 이내에 가상자산 거래소 계좌나 해외 페이퍼컴퍼니 계좌, 혹은 현금인출기(ATM)를 통해 전액 인출되어 빠져나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사안에서 원고가 2,000만 원을 2명의 계좌로 나누어 송금한 뒤 사기임을 뒤늦게 알아차렸을 시점에는 이미 해당 계좌의 잔고가 '0원'이 되어 있을 확률이 99% 이상입니다. 계좌에 반환할 피해금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금융감독원을 통한 채권소멸절차는 개시될 수 없으며 행정적 구제는 그 즉시 종결됩니다.
따라서 인출되어 사라져 버린 피해금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범행에 필수불가결한 '도구'인 계좌를 제공함으로써 불법행위에 기여한 계좌 명의인 2명을 직접적인 피고로 삼아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사법적 투쟁의 경로를 밟는 것만이 원고에게 남은 유일하고도 실질적인 법적 구제 수단이 되는 경우가 일반적 입니다.
3. 제1차적 법리 검토: 민법 제741조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의 성부
민사소송을 제기함에 있어 원고가 일차적으로 고려하는 청구원인은 민법 제741조에 기한 부당이득반환청구권입니다. 부당이득이란 법률상 원인 없이 타인의 재산이나 노무로 인하여 이익을 얻고 이로 인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에게 그 이익의 반환을 명하는 형평의 원칙에 기초한 제도입니다. 원고의 재산(2,000만 원)이 법률상 원인(사기 기망) 없이 피고들(2명의 계좌 명의인)의 계좌로 이전되었고 원고에게 손해가 발생하였으므로, 겉보기에는 부당이득의 요건을 완벽히 충족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3.1. 판례의 태도: '실질적 이득론'
그러나 보이스피싱 및 전기통신금융사기 범죄에 이용된 대포통장 계좌 명의인에 대한 부당이득반환청구 소송에서 대법원과 하급심 법원은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는 방향으로 일관된 판시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 법리적 핵심 기저는 이른바 '실질적 이득론'의 엄격한 적용에 있습니다.
최근의 판례를 분석해 보면, 법원은 피고들(계좌 명의인)의 계좌로 이체된 원고의 돈이 이체 즉시 피싱 주범 등 성명불상자에게 전액 인출되어 빠져나간 사정에 주목합니다. 법원은 전기통신금융사기 범행에 있어 실질적이고 종국적인 재산상 이득을 취하는 주체는 기망 행위를 기획하고 실행한 '사기 주범'이 따로 존재한다고 봅니다. 원고가 피고들 명의의 계좌로 돈을 송금했다는 객관적 사실 하나만으로는 피고들이 해당 금원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권을 획득하여 '예금 채권 상당의 이득을 가지게 되었다'고 평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판례의 태도는 민법상 부당이득 제도가 불법행위에 대한 징벌이나 제재가 아니라, 오로지 이득자의 주머니에 실질적으로 남아있는 가치를 피해자에게 환원시키는 것에 목적이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입니다. 따라서 피고들의 주머니가 비어 있는 이상 부당이득은 성립할 여지가 없습니다.
3.2. 부당이득반환청구의 예외적 인용 가능성
그렇다면 부당이득반환청구는 본 사안에서 무용지물입니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음과 같은 예외적인 상황에서는 청구가 인용될 가능성이 열려 있으므로, 소송 기술상 이를 완전히 배제해서는 안 됩니다.
첫째, 원고가 2명의 계좌로 송금한 직후 신속하게 은행에 지급정지를 요청하여, 사기단이 돈을 미처 전부 인출하지 못하고 일부 또는 전부의 금원이 피고들의 계좌에 그대로 '보유'되어 있는 경우입니다. 판례에 따르면, 피해자가 송금한 돈이 계좌에 잔존하는 경우에는 통장 명의자가 해당 예금 채권에 대한 법률상 지배권을 사실상 보유하고 있으므로 실질적 이득이 인정되어 부당이득반환의무를 지게 됩니다.
둘째, 피고들의 소송 불참으로 인한 '무변론 승소 판결'의 가능성입니다. 보이스피싱 계좌 명의인들은 경제적으로 극히 궁핍하거나 법률 지식이 전무하여 소장이 송달되더라도 아예 대응하지 않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부당이득 반환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는데, 피고가 변론기일에 출석하지 않고 답변서도 제출하지 않자 재판부는 민사소송법상 자백간주 법리를 적용하여 원고의 청구를 전부 인용하는 판결을 내린 사례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본 사안에서 원고의 2,000만 원이 이미 사기 조직에 의해 전액 인출된 정황이 농후하다면, 부당이득반환청구만을 단일한 청구원인으로 삼아 본안 소송을 진행하는 것은 판례에 비추어 기각될 위험이 매우 높습니다. 따라서 부당이득반환청구는 피고 계좌에 잔존 금원이 발견될 불확실한 가능성이나 피고들의 무대응을 노리는 전략적 차원의 '예비적 청구원인'으로 배치하는 것이 소송법적으로 타당합니다.
4. 제2차적 법리 검토: 민법 제760조 제3항 공동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
부당이득의 반환이 부정되는 가혹한 현실 앞에서, 피해자가 편취당한 금원을 회수하기 위해 꺼내들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실질적인 법리적 무기는 바로 민법 제760조 제3항의 '공동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입니다. 이는 피고들(계좌 명의인 2명)이 대가를 바라고 타인에게 접근매체를 대여하거나 양도함으로써 「전자금융거래법」을 중대하게 위반하였고, 이러한 불법적인 부주의 행위가 결과적으로 사기 조직이 원고를 기망하여 돈을 편취하는 범행을 결정적으로 용이하게 한 '방조'에 해당한다는 논리 구조를 취합니다.
4.1. 민사상 불법행위 방조 책임의 완화된 성립 요건
형법 체계에서 누군가를 사기방조죄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정범(사기 주범)이 사기 범행을 저지른다는 사실에 대한 '고의(미필적 고의 포함)'가 엄격하게 증명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의 기조가 되는 공동불법행위의 영역에서는 그 요건이 완화됩니다.
민법 제760조 제3항은 "교사자나 방조자는 공동행위자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방조'는 형사법상의 방조와 달리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직접, 간접의 모든 행위를 폭넓게 포괄하며, 작위뿐만 아니라 작위의무가 있는 자의 부작위도 포함됩니다. 더욱 중요한 점은, 민사상 방조는 불법행위에 대한 고의가 없더라도 그 방조 행위 자체에 '과실'이 있다면 성립할 수 있다는 이른바 '과실에 의한 방조' 법리가 확고히 인정된다는 것입니다. 민사(민법) 영역에서는 방조자가 주된 불법행위에 대한 “고의”가 없더라도, 방조행위 자체에 “과실”(주의의무 위반)이 있으면 민법 제760조 제3항의 방조로서 공동불법행위 책임이 성립할 수 있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시가 반복되어 왔습니다(대법원 2018다283629, 대법원 2012다80606). 다만 대법원은 과실만 있으면 곧바로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방조행위와 손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 및 “구체적 예견가능성”을 요구하면서 책임의 과도한 확장을 경계하는 기준을 함께 확립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13다81873, 대법원 2012다95899, 대법원 2012다80606).
계좌 명의인이 대출 실적을 올려주겠다는 거짓말에 속거나, 아르바이트 대가를 지급하겠다는 제안에 현혹되어 성명불상자에게 자신의 통장, 체크카드, 비밀번호, OTP 등 접근매체를 통째로 넘겨주는 행위는 현행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 제3항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범죄 행위입니다. 법원은 이러한 명백히 불법적인 통장 대여 행위가 사기단의 기망 범행과 물리적, 시간적으로 결합하여 피해자에게 손해를 가하였다면, 명의인이 자신의 계좌가 불법행위에 사용될 수 있음을 예견할 수 있었던 이상 '과실에 의한 방조'로서 공동불법행위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판시한 사례가 있습니다.
4.2. '상당인과관계' 및 '예견가능성'의 입증: 승패를 가르는 분수령
민사에서 방조책임은 고의뿐 아니라 과실 방조도 가능하나, 책임이 과도하게 확장되지 않도록 예견가능성·상당인과관계를 중심으로 신중히 판단한다는 기준이 반복됩니다(울산지방법원 2021가단10400, 서울중앙지방법원 2024나44121). 따라서 소송의 실질적인 승패는 피고들의 '예견가능성(Foreseeability)'과 이로 인한 '상당인과관계'를 원고가 얼마나 치밀하게 입증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소송에 직면한 피고들은 통상적으로 "나도 대출 사기를 당해 통장을 빼앗긴 피해자일 뿐이며, 내 통장이 보이스피싱과 같은 중대 범죄에 사용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실제로 피해자가 부업 사기 계좌 명의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으나, 계좌 양도 행위와 사기 범행 간의 예견가능성 및 상당인과관계를 충분히 입증하지 못해 청구가 기각된 패소 사례도 적지 않게 존재합니다.
4.3. 전자금융거래법상의 '중대한 과실' 법리의 차용과 유추 적용
원고의 입증 부담을 덜기 위한 논리적 무기로서, 전자금융거래법 제9조에 명시된 '이용자의 중대한 과실' 법리를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에 유추 적용하는 전략이 유효합니다. 동법 제9조에 따르면 금융기관은 접근매체의 위조 등으로 발생한 사고에 대해 원칙적으로 배상 책임을 지지만, 이용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개입된 경우에는 그 책임의 전부 또는 일부를 이용자에게 부담시킬 수 있습니다.
민법 제760조 제3항은 불법행위의 방조자를 공동불법행위자로 보아 방조자에게 공동불법행위의 책임을 부담시키고 있습니다. 방조는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직접, 간접의 모든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손해의 전보를 목적으로 하여 과실을 원칙적으로 고의와 동일시하는 민사법의 영역에서는 과실에 의한 방조도 가능하며, 이 경우의 과실의 내용은 불법행위에 도움을 주지 말아야 할 주의의무가 있음을 전제로 하여 그 의무를 위반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타인의 불법행위에 대하여 과실에 의한 방조로 공동불법행위의 책임을 지우기 위해서는 방조행위와 불법행위에 의한 피해자의 손해 발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하며, 상당인과관계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과실에 의한 행위로 인하여 해당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한다는 사정에 관한 예견가능성과 아울러 과실에 의한 행위가 피해 발생에 끼친 영향, 피해자의 신뢰 형성에 기여한 정도, 피해자 스스로 쉽게 피해를 방지할 수 있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그 책임이 지나치게 확대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는 것(대법원 2014. 3. 27. 선고 2013다91597 판결 등 참조)이 판례의 입장입니다.
한편,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 제3항 제1호는 현금카드 등의 전자식 카드나 비밀번호 등과 같은 전자금융거래에서 접근매체를 양도하는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그 위반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는바, 이는 예금주의 명의와 다른 사람이 전자금융거래를 함으로 인하여 투명하지 못한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전자금융거래의 안정성과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전자금융거래를 이용하는 목적이나 이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개별적인 거래의 내용이 다양하므로, 접근매체의 양도 자체로 인하여 피해자가 잘못된 신뢰를 형성하여 해당 금융거래에 관한 원인계약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접근매체를 통하여 전자금융거래가 이루어진 경우에 그 전자금융거래에 의한 법률효과를 접근매체의 명의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을 넘어 그 전자금융거래를 매개로 이루어진 개별적인 거래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접근매체를 양도한 명의자에게 과실에 의한 방조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지우기 위해서는, 접근매체 양도 당시의 구체적인 사정에 기초하여 접근매체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개별적인 거래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는 점과 그 불법행위에 접근매체를 이용하게 함으로써 그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한다는 점을 명의자가 예견할 수 있어 접근매체의 양도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예견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는 접근매체를 양도하게 된 목적 및 경위, 그 양도 목적의 실현 가능성, 양도의 대가나 이익의 존부, 양수인의 신원, 접근매체를 이용한 불법행위의 내용 및 그 불법행위에 대한 접근매체의 기여도, 접근매체 이용 상황에 대한 양도인의 확인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5. 4. 9. 선고 2014다233886 판결)는 것이 판례의 견해입니다.
본 사안의 미션 사기에 이용된 계좌 명의인 2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이 정상적인 상거래나 금융기관의 대출 절차가 아님을 상식적으로 의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소정의 알바비나 대출 승인을 약속받고 일면식도 없는 성명불상자에게 자신의 민감한 금융 접근매체를 일체 양도하였다면 , 이는 일반적인 주의의무를 현저히 결여한 중과실임이 명백합니다. 원고는 이 법리를 차용하여, 피고들의 행위가 단순한 부주의를 넘어 불법행위 방조를 구성할 만큼 비난 가능성이 높은 중대한 과실임을 재판부에 각인시켜야 합니다.
책임 구성 요건 비교 | 형사상 방조 (사기방조죄) | 민사상 방조 (공동불법행위 기한 손해배상) |
주관적 성립 요건 | 정범의 사기 범행에 대한 고의 (미필적 고의 포함) |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한다는 인식 및 과실로도 족함 |
객관적 성립 요건 | 범행을 실질적, 직접적으로 돕는 작위 또는 부작위 | 범죄 행위를 물리적, 정신적으로 용이하게 하는 모든 직·간접 행위 |
인과관계의 정도 | 방조행위와 범죄결과 사이의 인과관계 (상대적으로 엄격함) | 과실 행위와 피해자의 손해 발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 (완화됨) |
적용례 | 명의인이 사기 의도를 몰랐다면 무혐의나 기소유예 처분 가능성 높음 | 통장 양도 행위 자체의 위법성으로 인해 과실 인정 및 손해배상 가능성 높음 |
5. 손해배상액의 산정: 개별 책임의 분절과 과실상계의 엄격성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의 법리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재판 실무상 피고들이 원고가 입은 전체 피해액 2,000만 원 전액에 대하여 연대하여 배상하는 판결이 내려지는 경우는 지극히 드뭅니다. 이는 다수 당사자가 개별적으로 개입된 공동불법행위에서 책임 범위의 획정 원칙과, 민사법을 관통하는 공평의 이념인 '과실상계' 법리가 엄격하게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5.1. 과실 방조의 공동불법행위 손해배상액의 산정 원칙
공동불법행위가 성립하면 가해자들은 피해자에 대해 연대하여 손해 전액을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 민법 규정의 문언입니다(민법 제760조). 또한 “가해자 1인이 다른 가해자보다 가공 정도가 경미”하다는 이유로 피해자에 대한 관계에서 책임범위를 일부로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 판례의 견해(청주지방법원영동지원 2024가단11695)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각 계좌제공자 사이까지 ‘관련공동성’으로 묶일수 있을지가 실무상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계좌제공자별 행위가 서로 객관적으로 관련공동된 ‘하나의 공동불법행위’로 평가되기 어렵다면, 법원은 각 피고 계좌로 실제 송금된 금액까지만 인과관계를 인정하거나(또는 다른 피고 송금분에 대해 인과관계 부정) 일부만 인정하는 방식의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대전지방법원 2020나103090 등). 판례는 ① 자신 명의 계좌에 대하여는 통장이나 OTP카드 등 접근매체를 새로 발급받아 양도한 기존 접근매체의 기능을 중단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범행에 사용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존재하나, 타인 명의 계좌는 위와 같이 범행에 사용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 점, ② 접근매체를 양도하면서 자신 외에 다른 양도인이 존재한다는 점을 예견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구체적인 범행수법이나 누구의 계좌가 얼마나 범행에 사용되는지 까지는 예상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 ③ 타인 명의 계좌로 송금된 피해금액의 경우, 그 부분 불법행위에 대하여는 자신이 양도한 접근매체의 기여도가 사실상 없다시피 하므로, 그러한 구분 없이 전체 사기 피해액에 대해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책임을 진다는 것은 너무나 가혹한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위 접근매체를 양도한 피고들의 행위와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위 피고들의 각 계좌로 입금된 금액을 넘어서는 원고의 청구는 이유 없다고 판단한 사례도 있습니다.
5.2. 원고의 과실상계: 피해자의 부주의에 대한 자기 책임의 원리
피고들의 개별 책임 한도액이 정해지더라도, 그 금액 전액을 돌려받을 수는 없습니다. 민사상 손해배상의 공평 타당한 분담을 지도 원리로 하는 민법 제396조의 과실상계 법리가 불법행위 영역에도 필수적으로 준용되기 때문입니다. 과실상계는 “신의칙상 요구되는 주의”를 다하지 않아 손해 발생·확대에 기여한 피해자 과실을 공평의 원칙상 참작하는 제도로 설명되며, 손해배상의무자가 주장하지 않아도 법원이 직권으로 심리·판단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시가 있습니다(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2024가단233525 등)
구체적으로 본 사안과 같은 '미션 사기'의 경우, 법원은 원고가 일면식도 없는 자가 인터넷이나 메신저를 통해 제안한 "미션 수행 시 원금의 수 배 보장"이라는 비상식적이고 허무맹랑한 수익 모델에 지나치게 쉽게 속아 넘어간 점, 사기범이 지시하는 대로 여러 명의 전혀 모르는 개인 명의 계좌로 거액을 반복적으로 송금하면서도 그 진위나 위험성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점, 은행 이체 과정에서 출력되는 금융사기 주의 문구를 간과한 점 등을 원고 측의 중대한 '부주의' 내지 과실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피고 A의 계좌로 800만 원을 송금했고 재판부가 원고의 과실을 70%로 보아 피고 A의 책임을 30%로 제한한다면, 원고는 피고 A로부터 240만 원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법정이율)을 배상받게 됩니다. 비록 피해 원금 2,000만 원 전액을 회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범인을 영영 잡지 못해 전액을 상실할 절망적인 상황에서는 계좌 명의인들을 상대로 한 이 같은 '일부 승소' 판결이 실질적인 피해 회복의 마중물이 된다는 점에서 그 법적 가치는 매우 큽니다.
6. 원고를 위한 실전 민사소송 수행 전략 및 구체적 절차
지금까지 검토한 방대한 법리적 쟁점들을 실제 소송이라는 전장에서 원고 측에 유리한 결과로 치환하기 위해서는, 정교하게 기획된 다층적인 소송 수행 전략과 증거 수집의 기술이 요구됩니다.
6.1. 소장 구성의 묘: 주위적 청구와 예비적 청구의 병합
소장은 재판부와 피고들을 향한 최초의 공격 수단이므로 법리적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구성되어야 합니다.
주위적 청구원인 (Primary Claim): 본안의 핵심 논리로서 '공동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를 전면에 내세웁니다. 피고들이 현행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 제3항을 중대하게 위반하여 성명불상자에게 접근매체를 양도하였고, 이러한 불법 행위가 원고에 대한 사기 범행을 촉진하고 방조하여 재산상 손해를 입혔음을 구체적으로 주장하며, 각 피고의 계좌로 이체된 송금액 상당의 손해배상을 구합니다.
예비적 청구원인 (Secondary Claim): 만약 법원의 심리 과정에서 피고들의 방조 행위와 손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입증 부족 등으로 부정될 최악의 경우를 대비한 안전장치입니다. '부당이득반환청구'를 예비적으로 주장하여, 행여나 피고들의 계좌에 원고의 자금이 일부라도 동결되어 남아있거나, 피고들이 소송에 무대응으로 일관할 경우 실질적 이득의 반환 또는 자백간주를 통한 인용 판결을 노립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부당이득반환청구를 주위적으로 공동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를 예비적으로 하는 것이 유리할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6.2. 증거의 확보: 형사사건 기록의 적극적 활용 (문서송부촉탁 등)
민사소송법상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고의 불법행위 요건(고의, 중과실, 인과관계 등)에 대한 증명 책임은 전적으로 피해자인 원고에게 있습니다. 사기 조직과 접촉한 사실조차 없는 원고가 피고들의 계좌 양도 경위를 스스로 입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소송 제기와 병행하거나 가급적 선행하여, 해당 2명의 명의인들에 대한 관할 경찰서 형사고소 절차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소송이 개시되면 원고는 재판부에 '문서송부촉탁신청'을 제출하여, 관할 검찰청이나 형사법원에 보관된 피고들의 수사기록 일체(피의자신문조서, 수사보고서, 공소장, 형사 1심 판결문 등)를 민사 법정으로 현출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6.3. 다수 피고에 대한 분할 대응 전술
2명의 피고를 한 번에 공동 피고로 묶어 소장을 접수하되, 소송의 진행 경과에 따라 개별 피고의 대응 태도별로 맞춤형 분할 전략을 전개해야 합니다.
무대응 피고 (Default Judgment): 소장 부본을 송달받고도 30일 이내에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는 피고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무변론 판결 선고기일의 지정을 재판부에 요청하여, 다툼 없이 조기에 집행 권원(승소 판결문)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적극 항변 피고 (Active Litigation): 변호사를 선임하거나 스스로 답변서를 제출하며 "나도 피해자이며, 보이스피싱인 줄 전혀 몰랐다"며 책임을 전면 회피하려는 피고에 대해서는, 충분히 자신의 계좌가 범죄 자금의 세탁 등 불법적인 용도로 사용될 것임을 강하게 의심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미필적으로 용인한 '중과실'이 뚜렷하게 존재했음 주장하고 입증해야 합니다.
7. 결론
결과적으로, 원고는 관할 법원에 2명을 공동피고로 특정하는 정교한 손해배상 청구 소장을 즉각 접수하고, 이와 병행하여 수사기관을 통해 피고들의 범죄 가담 및 처벌 기록을 신속히 확보하는 데 소송 역량을 집중해야 합니다. 아울러 경찰청 통합신고대응센터에 범죄 이용 계좌에 대한 강력한 임시조치 등 구제 조치를 끈질기게 요구하는 전략을 병행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중요 안내 및 면책 공고]
실제 소송의 진행은, 법리와 재판부의 판단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매우 고도의 전문 영역입니다. 세상에 본 사건과 완벽히 동일한 사실관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본 글의 내용을 개별 사건에 임의로 직접 적용하여 발생하는 법적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으며, 실제 분쟁이 발생하였을 경우에는 대응 초기 단계부터 반드시 변호사 등 법률 전문가와 직접 대면 상담기를 강력히 권고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