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분석] 억울한 세관 벌금 통지서, 왜 ‘행정소송’으로 다툴 수 없을까?— 관세법상 ‘통고처분’의 특수성과 헌법재판소의 결정(96헌바4)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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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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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분석] 억울한 세관 벌금 통지서, 왜 ‘행정소송’으로 다툴 수 없을까?
— 관세법상 ‘통고처분’의 특수성과 헌법재판소의 결정(96헌바4)을 중심으로
안녕하세요, 조길현 법률사무소입니다.
수출입 업무를 담당하시거나 관세 행정을 접하다 보면, 세관으로부터 ‘통고처분(通告處分)’이라는 것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관세법 위반 혐의가 있으니, “검찰로 넘어가 형사재판을 받는 대신 벌금 상당액을 납부하고 끝내자”는 일종의 행정적 제재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 처분이 너무나 억울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통의 행정처분(과세처분 등)이라면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을 떠올리실 겁니다.
하지만 “통고처분은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억울한데 소송을 못 한다니, 이게 무슨 말일까요? 오늘은 이와 관련하여 헌법재판소가 내린 중요한 결정(96헌바4)을 통해, 통고처분의 본질과 올바른 불복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1. 사건의 발단: “세금 혜택 받은 기계, 함부로 넘겼다?”
사건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A은행은 한 섬유회사에 자금을 대출해주면서, 관세 감면을 받고 수입된 ‘재봉기’를 담보로 잡았습니다. 이후 회사가 부도가 나자, 은행은 이 담보물을 다른 곳에 양도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습니다. ‘관세 감면을 받은 물품’을 세관장의 허가 없이 양도하는 것은 관세법 위반입니다. 세관은 은행과 담당 직원에게 ‘벌금 상당액’을 납부하라는 통고처분을 내렸습니다.
은행 측은 억울했습니다. “절차를 몰랐을 뿐 고의가 아니었다”며, 벌금을 내는 대신 이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나아가 “행정소송을 못 하게 막아놓은 법 조항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까지 청구했지요.
2. 헌법재판소의 판단: “통고처분은 ‘명령’이 아니라 ‘제안’이다”
헌법재판소는 은행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합헌 결정). 그 핵심 논리는 ‘통고처분의 법적 성격’에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겪는 세금 고지서나 영업정지 명령은 국가가 강제로 의무를 지우는 ‘처분’입니다. 따르지 않으면 강제집행이 들어옵니다. 그래서 행정소송으로 다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통고처분은 성격이 다르다고 보았습니다.
“통고처분은 상대방의 임의의 승복을 그 발효요건으로 한다.”
쉽게 말해, 통고처분은 국가가 여러분에게 “당신, 재판받으면 전과자가 될 수 있어. 그러니 돈을 내고 여기서 사건을 덮는 게 어때?”라고 제안(Offer)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제안이기 때문에, 강제력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행하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강제력이 없는 행위에 대해 법원이 “취소하라”고 판결할 이유(처분성)가 없다는 것이죠.
3. 그렇다면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 ‘침묵의 저항’
행정소송이 불가능하다면, 억울한 혐의를 벗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헌법재판소는 아주 명쾌한(그러나 실무자에겐 조금 무서운) 방법을 제시합니다.
“이의가 있으면 통고 내용을 이행하지 말라.”
이것이 유일한 불복 방법입니다. 절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통고처분 무시: 세관이 보낸 고지서를 내지 않고 가만히 있습니다.
고발 조치: 세관장은 “아, 이 사람이 제안을 거절했구나”라고 판단하고, 사건을 검찰에 고발합니다.
형사 절차: 이제 사건은 정식 형사사건이 됩니다.
법원의 판단: 여러분은 형사법정에서 판사님께 “나는 억울합니다”라고 다투어 무죄 판결을 받아내면 됩니다.
즉, 통고처분에 대한 불복은 ‘행정소송’이 아니라 ‘형사재판’을 통해 이루어지는 구조입니다.
4. 왜 이런 제도를 만들었을까요?
이 제도가 존재하는 이유는 ‘신속함’과 ‘전과 방지’ 때문입니다.
기업의 입장: 사소한 실수로 기소되어 법정에 서고, ‘전과자’라는 기록이 남는 것은 치명적입니다. 통고처분을 이행하면 형사처벌을 면제받고, 전과 기록도 남지 않습니다. 비용과 시간을 아끼는 혜택입니다.
국가의 입장: 수많은 관세사범을 일일이 재판하려면 법원과 검찰의 업무가 마비됩니다. 전문성 있는 세관 공무원이 1차적으로 걸러내어 효율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5. 변호사의 실무 조언: ‘납부’ vs ‘불복’의 갈림길에서
통고처분 통지서를 받으셨다면,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 냉철한 계산이 필요합니다.
혐의가 명백하다면: 통고처분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현명합니다. ‘벌금 상당액’을 내는 것이 억울해 보일 수 있지만, 정식 재판으로 가서 변호사 비용을 쓰고 전과 기록이 남는 것보다는 훨씬 경제적입니다.
정말 억울하고 법리적 다툼의 여지가 있다면: 이때는 과감히 통고처분을 거부(미이행)해야 합니다. 단, 이때부터는 ‘피의자’ 신분이 되어 검찰 수사와 형사 재판을 받아야 하므로, 반드시 초기부터 전문가(변호사 겸 관세사)의 조력을 받아 무죄 입증 전략을 짜야 합니다.
마치며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통고처분은 국가의 배려이자 제안이므로, 싫으면 거절하고 정식 재판에서 당당히 싸우라”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기업 실무자 입장에서 ‘형사 재판’을 각오하고 통고처분을 거부하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통고처분을 받으셨다면, 즉시 납부하기 전에 전문가와 상의하여 ‘이 처분을 수용하는 것이 이득인지, 아니면 형사 절차에서 무죄를 다투어볼 만한 사안인지’를 정밀하게 분석하시기 바랍니다.
법률과 관세, 두 가지 전문성을 바탕으로 여러분의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돕겠습니다.



